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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노충현의 작업은 크게 <자리>와 <살풍경> 두 가지 시리즈로 나뉘어진다. 두 시리즈는 각각 공간을 어떻게 드러내는가와 풍경을 어떻게 드러내는가라는 지점에서 전자는 동물원을 후자는 한강시민공원을 그림의 대상으로 선택하고 있다. 동물원은 사실 이미 많은 부분 태생적으로 매우 이상한 속성을 지닌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동물에게 비교적 이상적일 것으로 판단된 거처의 조건들을 인공적으로 삽입해 놓는 등, 건축적인 의미에서 볼때 자연을 모사한 축조 공간으로 이미 물리적인 가상공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동물원의 실내외 공간이 가지고 있는 형태적, 공간적 양상은 작가에게 매우 흥미로운 것이 었던 것 같고, 그는 결국 다시 그 공간이 동물원인지를 정확히 알 수 없도록 동물을 등장시키지 않음으로써 생명이 느껴지지 않는 매우 수상한 공간으로 전환시키고 있다.
 

 
<살풍경> 시리즈 역시 작가는 풍경 속에서 인위적으로 형성된 공원의 여러가지 요소들을 보다 주된 대상으로 등장시키면서 그러한 풍경의 속성에 근접해간다. 한강시민공원에 가면 언제든지 볼 수 있는 스넥카나 터널, 수영장 등등의 구조물들의 미만한 존재감이나, 도시의 공공 장소들을 규정하는 시설물의 공허한 아우라, 이것은 오히려 노충현의 회화속에서 매우 중요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작가는 공원의 사람들을 지움으로써 오히려 공원을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간 영화세트장처럼 보이게 금 하는데, 이러한 방법을 통해서 그 시설물이나 구조물들의 물성을 드러내고 이는 노충현 회화의 풍경에 있어 중요한 뉘앙스를 형성한다.

 

그의 그림들은 작가가 역붓질이라고 부르는 방법을 통해서 매우 얇으면서도 다소 거칠거나 건조해보이는 그림 표면과 텍스쳐를 지니고 있다. 작가는 주로 사진을 찍은 후 그것을 가정용 잉크젯 프린터에서 인쇄한 후에 그 프린터의 제한적인 잉크를 통해서 왜곡되는 색감, 그 인공성을 그림에 조합한다고 한다. 사진으로 부터 프린터로, 그리고 다시 화폭으로 이어지면서 동시에 풍경속에서 존속하는 인물들을 지워지고, 풍경 속 대상의 물성에 화면이 집중되는 등, 최종의 이미지는 결국 여러 단계의 번안과정을 통과하여 만들어지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그의 그림들은 색감만으로도 상당히 미묘한 지점을 찾아가고 있는 듯 하다. 그가 비록 뤽 투이만과 같은 유럽 작가들의 세련된 회화에 영향을 받았다고는 하나, 오히려 빛바램, 조야함, 흐릿함 등, 매우 지역적인 정서를 반영하는 질감이나 톤 등의 조건 사이에서 줄을 타며 서울 도시의 공공 장소의 세팅을 매우 공허하고도 무미건조하게-마치 그 공공의 이름속에 담겨지는 인위적이거나 행정적인 냄새들처럼-드러내고 있다.

 

작가는 스스로 회화적 테크닉이 한참 부족했기 때문에 묘사하기 힘든 것들을 배제하고 덜어내면서 결국 공연이 열리지 않는 무대나 배우가 빠진 영화세트 같은 공간과 풍경을 만들어 내게 되었다고 하는데, 이러한 과정을 통해 오히려 최근의 <살풍경>시리즈에서 작가는 주로 하나의 대상과 여백의 관계로 집약된 한층 더 입장이 분명해진 그림들을 완성해 내고 있다. 아직 몇몇 작업들은 뤽 투이만 식의 감각적인 프레임과 이미지 크로핑에 의해 보다 드라마적 뉘앙스가 강하게 풍기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작가의 공간과 풍경을 바라보는 인식은 사면에 여백을 두고 화면 중앙에 대상을 위치시키면서 보다 중립적으로 대상과 대상이 놓여진 주변의 관계를 드러내는 작업들 속에서 한층 더 날카롭게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작업들 속에서 작가의 회화적 어법이 보다 분명히 획득된다고 할 수 있다.

 

회화에 있어 오늘날 중요한 것은 작업이 어떠한 이미지를 담느냐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즉, 묘사력이나 그리는 테크닉의 정도보다는, 바로 어떠한 태도로 무엇에 대한 인식을 드러내며 그것을 어떠한 방법과 어법으로 지지하여 화면에 드러내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따라서 동시대의 화가들은 자신이 인지하는 세계에 대한 입장을 그림의 대상과 형식을 통해 드러내는 데 고심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종종 감각적으로 현혹하는 이미지의 생산 자체가 예술 작품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여기는 오류를 범하게 되는데, 진정한 예술 속에는 늘 고도의 정치가 내포되어 있음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회화의 정치는 바로 이미지의 감각적 재현 자체가 아닌, 재현의 어법에 대한 고심에 놓여진다. 때문에 현재 노충현의 작업의 의미는 또 한편으로는 그가 지속적인 과정을 통해 이러한 어법을 획득하는 과정을 수행해 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김현진 / 전시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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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laxogml 무미건조해 지는 느낌이 들어요.. 2010.10.01 16:5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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